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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과 '남산의 부장들', 두 얼굴의 한국 현대사

by 지식탐정 알고남 2025. 8. 15.

인물을 통한 한국 현대사의 두 가지 얼굴
인물을 통한 한국 현대사의 두 가지 얼굴

영화는 단순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넘어, 특정 인물의 눈을 통해 시대를 읽어내고, 그 인물의 선택과 변화를 따라가며 깊은 공감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서 '인물 중심' 서사는 시대를 관통하는 아픔과 인간의 깊은 고뇌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는 핵심적인 장치가 됩니다. 개개인의 삶이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어떻게 흔들리고 부딪히며 변화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은 마치 그 시대를 함께 겪는 듯한 몰입감을 경험하게 되죠. 오늘은 송강호 주연의 '변호인'과 이병헌 주연의 '남산의 부장들'을 통해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서사가 어떻게 영화의 메시지와 분위기, 그리고 시대 해석을 다르게 그려내는지 심층적으로 비교해보려 합니다.

1. '변호인': 한 인간의 각성과 성장 서사, 그리고 시대의 정의

영화 '변호인'은 1980년대 암울했던 부산을 배경으로, 오직 돈벌이에만 집중하던 속물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분)이 '부림사건'이라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일을 겪으며 비로소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극적인 과정을 그립니다. 이 영화의 서사는 송우석이라는 한 인물의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의 변화와 성장에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며, 이를 통해 당시 사회의 모순과 부당함을 고발하는 구조를 취합니다.

처음에는 돈 잘 벌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표였던 송우석은 고졸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성공 가도를 달리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단골 국밥집 아들 진우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명목으로 용공 조작 사건에 휘말리자,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안위만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송우석은 진우와 그의 가족이 겪는 억울하고 부당한 고통을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자신의 가치관에 근본적인 균열이 일어남을 느낍니다. 영화는 송우석이 사법 정의와 인권의 중요성에 눈뜨고, 개인의 이익보다 '옳고 그름'을 추구하는 대의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과정을 섬세하고 뜨겁게 담아냅니다. 법정에서 펼쳐지는 그의 절규에 가까운 변론과 용기 있는 행동은 관객으로 하여금 가슴 깊이 울림을 선사하며, 시대를 거스르는 한 개인의 정의 실현이자 희망의 상징으로 다가섭니다. '변호인'은 송우석 개인의 서사를 통해 불의에 맞서는 인간의 용기와 각성을 노래하며, 비록 현실은 어둡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 찬가를 그립니다.

2. '남산의 부장들': 권력의 비극 속, 한 인물의 파멸 서사와 역사적 아이러니

반면,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다룹니다. 이 영화 역시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 분)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지만, '변호인'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물 중심' 서사를 활용하여 권력의 속성과 비극을 조명합니다.

김규평은 권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위치에서,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과 동시에 끊임없는 의심과 견제 속에서 고뇌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한때 충성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변해가는 모습과, 김형욱 전 중정부장 등의 주변 인물들이 권력의 생리 속에서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를 지켜봅니다. 김규평은 대통령에 대한 오랜 충심과 개인적인 연민, 그리고 조국과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번민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영화는 차갑고 건조한 시선으로 김규평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복잡다단한 심리와 그가 결국 비극적인 선택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인물 중심 서사는 한 개인이 거대한 권력 시스템과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를 추적합니다. 김규평의 선택은 단순한 개인의 의지라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예측 불가능한 권력 역학관계와 시대적 상황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관객은 김규평이라는 인물을 통해 최고 권력자의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가 국가 전체에 어떤 파국을 가져올 수 있는지, 그리고 절대 권력이 결국 어떻게 자신을 집어삼키는지를 섬뜩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3. 두 '인물 중심' 서사의 결정적인 차이: 희망 vs. 비극

결론적으로, '변호인'과 '남산의 부장들'은 모두 '인물 중심'의 서사를 택했지만, 그 접근 방식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극명하게 다릅니다.

  • **'변호인'**은 송우석이라는 인물의 성장과 각성을 통해 부조리한 시대에 맞서는 개인의 용기,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희망과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관객은 그의 고뇌와 선택에 깊이 공감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 **'남산의 부장들'**은 김규평이라는 인물의 혼란과 파멸을 통해 절대 권력의 잔인한 속성, 역사의 비극성, 그리고 인간 본연의 어두운 면을 냉철하게 파고듭니다. 관객은 그의 마지막 선택을 통해 권력이 초래하는 파국적 결말을 목도하게 됩니다.

전자가 한 인물의 용감한 변화를 통해 대중에게 감동과 울림을 주며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한다면, 후자는 한 인물의 고뇌와 파멸을 통해 현대사의 냉혹한 이면과 인간성의 복합적인 그림자를 담담히 비춥니다. 한 시대의 희망과 좌절을 각기 다른 인물의 눈으로 포착함으로써, 두 영화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심도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합니다.

결론: 인물을 통해 읽어내는 한국사의 깊이

두 영화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물 중심' 서사가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더 깊이 있고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변호인'은 인간적인 온기와 희망으로 관객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남산의 부장들'은 차가운 시선과 긴장감으로 권력의 본질과 인간의 나약함을 파헤칩니다. 같은 '인물 중심'이라도 영화의 메시지, 장르, 그리고 감독의 의도에 따라 이렇게나 다른 맛과 의미를 냅니다